(칼럼) 자유함 26.8.15 (모든 사람이) [남덕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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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칼럼) 자유함 26.8.15
오늘 2026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광복 81주년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되어 빼앗겼던 자유와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광복은 단순히 주권을 회복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며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인가를 일깨워 주는 날입니다.
그러나 81년이 지난 오늘도 한반도의 북녘에는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동포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복의 기쁨은 과거를 기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한반도 전체가 자유와 평화 가운데 하나 되는 복음통일을 향한 사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광복 81주년,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유를 지키고, 자유를 나누고, 아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8·15 광복은 단순히 나라를 되찾은 날이 아니라 잃었던 자유를 되찾은 날입니다.
자유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과 눈물로 얻어진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육체의 자유를 넘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는 참된 자유를 말씀합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한복음 8:36)
광복의 자유를 감사하며, 이제는 이 자유가 북녘 땅과 온 민족에게도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 가운데 하나는 자유입니다.
패트릭 헨리가 외쳤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처럼,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잃어본 사람은 자유가 공기와 같다는 것을 압니다.
공기는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르지만,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순간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조금 부족해도 살 수 있고, 집이 조금 불편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할 자유, 말할 자유, 믿을 자유, 이동할 자유, 선택할 자유를 빼앗기면 인간다운 삶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감옥의 가장 큰 고통도 단순히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없으며, 내가 원하는 시간에 문 하나조차 열고 나갈 수 없다는 것, 바로 자유를 빼앗긴 고통입니다.
그래서 자유는 값없이 주어지는 것 같지만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정치적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이동의 자유 뒤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피와 희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자유를 감사해야 하고, 자유를 지켜야 하며, 다음 세대에게 자유의 가치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육체적인 자유보다 더 근본적인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자유입니다.
몸은 자유로운데 영혼은 감옥에 갇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지만 사람의 평가에 붙들려 살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돈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않는데 죄와 욕망에 끌려다닐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육체는 갇혀 있어도 영혼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혔지만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발에는 차꼬가 채워져 있었지만 그들의 영혼까지 묶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에는 두 차원이 있습니다.
육체의 자유는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지만, 영적인 자유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한복음 8:36)
세상이 주는 자유도 귀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는 더욱 근본적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와 정죄와 두려움과 죽음에서 영혼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먼저 “자유로워져라”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먼저 선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
그리고 나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 순서가 복음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있고 그다음에 우리가 살아갈 삶이 있습니다.
먼저 은혜가 있고 그다음에 순종이 있습니다.
먼저 십자가가 있고 그다음에 제자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예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붙드셨기 때문에 그 자유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을 우리가 다시 완성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공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 죄와 정죄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인간을 가장 무섭게 묶는 쇠사슬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죄입니다.
죄책감입니다.
정죄입니다.
과거의 실패입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기억하며 자신을 정죄합니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나는 용서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실망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과거의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불하신 사람입니다.
또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복음은 우리를 조금 개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분을 바꿉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실패가 오늘의 나를 결정하게 하지 마십시오.
나의 실패보다 십자가가 더 큽니다.
나의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나의 연약함보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더 큽니다.
이것이 복음의 자유입니다.
3. 두려움과 사람의 평가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육체의 감옥만 감옥이 아닙니다.
두려움도 감옥입니다.
사람의 평가도 감옥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몸은 자유로워도 마음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운세와 징조, 특정한 날과 숫자, 사람의 말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지 마십시오.
우리의 인생을 붙들고 있는 것은 운명이 아닙니다.
우연도 아닙니다.
사람의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입니다.
하나님보다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보다 사람을 크게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보다 미래를 크게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크게 바라볼수록 두려움은 작아집니다.
신앙의 목적은 모든 미래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모르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영혼은 자유로워집니다.
4. 종교적인 멍에에서도 자유해야 합니다
종교적인 열심도 잘못하면 멍에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예배드려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하는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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